지명유래
■ 선너머
조선조 태종 10년에 경기전이 造營되자 인접하고 있는 향교에서 독강 하는 소리가 시끄러워 聖靈을 안위케하는데 어긋난다고 하여 전주부의 서쪽인 화산기슭인 삼계리에 이전하여 2백여년간 유지하였으나 , 한 말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완용이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단인 이곳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자 철거하고 중화산동 2가 산 13번지에 서원비를 세웠다 이러한 연유로 華山을 넘어 書院이 있다고 하여 화산서원 넘어를 선너 머라고 불렀으며, 서원너머에서 나오는 미나리는 전주 八味로 이름나 있었음.
■ 강당재
경기전에 인접해 있던 향교를 서원너머로 옮기고 華山書院을 설립, 요즘말로 학교군을 형성한 현재의 예수병원 주위는 항상 선비들로 들끓었으며, 노송이 우거진 오솔길로서 아침 저녁으로 학문을 닦는 교실(강당)을 향해 오르내리는 고개라고 하여 강당재라고 하였음
■ 따박골
완산칠봉의 한 봉우리인 용두봉을 서편으로 내려가면 용의 목줄기라 하는 가파른 바위길이 있어 이길을 따라 내려가면 쌍용골 구릉지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 일대를 따박골 또는 따비골 이라 한다.
■ 오두지맥이 있다해서 붙여진 가마귀골과, 완산칠봉 동남 기슭의 우람 한 산악이 포물선을 그으며 전주천의 물살을 끼고 진북사에 이른 잔등 유연대가 있다. 유연대는 동 터오르는 새벽의 산등성이가 마치 기린이 여의주를 토해내듯 주황빛으로 찬란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혁
년/월 |
연혁 |
1997.10.27 |
현 청사로 이전 |
1996.09.01 |
전주시조례 제2043호에 의거 중화산1동, 2동을 분동 |
1989.05.01 |
전주시조례 제1591호에 의거 완산구 설치로 완산구 편입 |
1973.07.01 |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1가, 2가를 합하여 중화산동이 됨 |
1957.12.12 |
전주시조례 제108호에 의거 남화산동은 서완산동에 넘겨주고, 중산동을 편입해 중산과 화산의 이름을 합하여 중화산동 이라는 동시에 북화 산동을 중화산동1가로, 중산동을 중화산동 2가로 분리 |
1949.08.15 |
법률 제32호로 "전주부"가 "전주시"로 개칭 |
1946 |
일본식 동명변경에 의하여 "정"을 "동"으로 고치고 남,북2동으로 분리 |
1940.10.01 |
"전주부"에 편입되어 "화산정"이 됨 |
1914 |
행정구역 폐합으로 "화한리"라 하여 이동면에 편입 |
0000 |
"전주군 부서면"의 지역으로 "화산서원"이 있어 화산이라 하였음 |